지난 시간에 안동 김씨 가문이 나라를 쥐고 흔들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던 세도정치 기억하시죠? 왕들은 힘이 없었고 나라는 멸망 직전이었습니다. 이때 이 무시무시한 세도 가문들의 눈을 피해 바짝 엎드려 살던 왕실의 아웃사이더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이하응, 사람들은 그를 '상갓집 개'라고 부르며 비웃었습니다.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세도 가문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모두 힘을 기르기 위한 무서운 연기였습니다. 1863년, 철종 임금이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마침내 숨겨둔 발톱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12살짜리 어린 아들(훗날 고종)을 하루아침에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아버지를 뜻하는 '흥선대원군'의 자리에 올라 조선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조선 말기 최고의 승부사였던 그가 바꾼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안동 김씨를 날려버린 대원군의 매운맛 개혁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자마자 대대적인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60년 동안 나라를 망쳐온 안동 김씨 세력들을 순식간에 조정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신분과 파벌에 상관없이 똑똑한 인재들을 널리 등용했죠.
특히 양반들이 가장 기겁했던 개혁은 '서원 철폐'와 '호포제'였습니다. 당시 서원은 선비들이 공부하는 곳이었는데, 나라에서 세금도 안 내고 노비도 지원받으면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도둑들의 소굴로 변해 있었습니다. 대원군은 "백성을 괴롭힌다면 공자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라며 전국 600개가 넘는 서원 중 고작 47개만 남기고 싹 다 없애버렸습니다. 또한, 그동안 양반이라는 이유로 내지 않던 군대 세금을 양반 집에도 똑같이 물리도록 법을 바꿨습니다(호포제). 백성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대원군 만세를 외쳤습니다.
무리한 욕심이 부른 화근: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여기까지만 보면 참 정치를 잘한 것 같지만, 대원군에게도 치명적인 실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임진왜란 때 불타서 27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왕실의 상징, '경복궁'을 다시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왕의 권위를 높이겠다는 좋은 의도였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드는 대공사였습니다.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원군은 조선의 경제를 파탄 내는 결정을 내립니다. 원래 쓰던 돈보다 무려 100배의 가치를 가졌다고 우기는 가짜 돈인 '당백전'을 마구 찍어낸 것입니다. 시장에 돈이 갑자기 너무 많이 풀리자 물가가 미친 듯이 뛰어올랐고, 백성들과 상인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여기에 공사를 한답시고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양반들의 무덤가에 있는 좋은 나무들까지 마구 베어가자, 대원군을 찬양하던 민심은 순식간에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서양 배들의 등장: "우리는 문을 잠그겠다" 쇄국정책
대원군이 안으로 개혁과 경복궁 공사로 정신이 없을 때, 밖에서는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연기를 뿜으며 움직이는 서양의 거대한 증기선(이국적인 배라는 뜻의 '이양선')들이 조선 앞바다에 수시로 나타나 "우리와 장사를 하자! 문을 열어라!"라며 대포를 쏘아댔습니다.
당시 서양 세력에게 점령당한 중국(청나라)의 비참한 모습을 전해 들은 대원군은 결심했습니다. "서양 오랑캐들과 손을 잡으면 나라는 망한다. 절대 문을 열어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나라의 문을 꽁꽁 잠근 '쇄국정책(통상 수교 거부 정책)'입니다.
조선은 침략해온 프랑스 군대(병인양요, 1866)와 미국 군대(신미양요, 1871)를 상대로 강화도에서 피 터지는 전투를 벌여 이들을 막아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대원군은 전국 각지에 "서양 오랑캐와 싸우지 않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은 '척화비'를 세우며 굳은 의지를 다졌습니다.
역사의 딜레마: 지연된 시간과 격동의 시작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서양 강대국들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막아내고 조선의 자주성을 지켰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며 급격하게 변하는 동안, 조선이 근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들었다는 뼈아픈 비판도 받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들 고종이 자라나면서 대원군은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조선은 이웃 나라 일본의 압박에 못 지겨 결국 문을 열게(강화도 조약) 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열린 문 너머로, 조선은 역사상 가장 격동적이고 잔인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3줄 핵심 요약
파격적인 대내 개혁: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잡은 후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양반들의 특권이었던 서원을 철폐하고 군포를 징수하는 등 파격적인 왕권 강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경복궁 중건의 그림자: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경복궁 중건을 추진하다가 당백전 발행으로 물가를 폭등시켜 양반과 백성 모두의 원망을 샀습니다.
쇄국정책과 외세의 침략: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에 맞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치르며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쇄국정책을 고수했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자주성을 지키려 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에서는 대원군이 물러난 후 고종 임금과 그의 아내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개방이 시작되면서, 조선의 주권을 빼앗으려는 주변 강대국들의 숨 막히는 침략 전쟁과 그 속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을 다룹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당시 몰려오는 서양 세력을 상대로 나라의 문을 잠갔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요, 아니면 시대를 읽지 못한 아쉬운 결정이었을까요? 여러분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