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나라의 문을 꽁꽁 잠갔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끝나고, 아들 고종과 그의 아내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조선이 마침내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강제로 열린 문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조선이라는 작고 힘없는 나라를 통째로 삼키기 위해 이웃 나라 일본은 물론이고 청나라, 러시아, 미국, 영국 등 세계의 내로라하는 강대국들이 늑대처럼 들이닥쳤기 때문입니다. 이 격동의 시기 중심에는 남편 고종을 도와 외교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 명성황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은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기 직전, 조선 왕실이 겪었던 가장 쓸쓸하고 아픈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외교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왕비, 일본의 표적이 되다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뒤, 조선의 외교를 주도한 인물은 명성황후(민비)였습니다. 그녀는 대원군처럼 무조건 문을 잠그기보다, 강대국들의 힘을 역이용하는 '이이제이(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 전술을 쓰려 했습니다.
당시 조선을 독점하려던 일본은 청나라와의 전쟁(청일전쟁)에서 이기며 거침없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명성황후는 북쪽의 또 다른 거인인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가 한마디 거들자 일본은 조선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죠.
조선을 다 삼켰다고 생각했던 일본 입장에서 명성황후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 영리한 여우(명성황후를 비하한 말)를 없애지 않으면 조선을 차지할 수 없겠구나." 일본의 공사 미우라는 조선의 궁궐을 습격해 왕비를 제거하겠다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끔찍한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을미사변: 궁궐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비극
1495년 10월 8일 새벽, 칼로 무장한 일본의 낭인(자객)들과 군인들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담장을 넘어 들이닥쳤습니다. 이들은 궁궐을 지키던 조선의 시위대를 무참히 살해하고, 왕비가 머물던 건청궁까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고종 임금이 가슴을 가로막으며 말렸고 세자가 울부짖었지만, 미쳐 날뛰는 일본 자객들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은 궁녀들 사이에 숨어있던 명성황후를 찾아내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왕비의 시신을 궁궐 뒷마당으로 끌고 가 석유를 뿌려 불태워버리기까지 했습니다.
한 나라의 국모가 대낮에, 그것도 나라의 상징인 궁궐 안에서 이웃 나라 자객들에게 살해당한 이 사건이 바로 '을미사변'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조선 백성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친 왕: 아관파천의 씁쓸함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완전히 무서운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아내가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것을 보았으니 "내 목숨도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린 것입니다. 실제로 고종은 독살당할까 봐 신하들이 가져오는 궁궐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미국인 선교사들이 배달해 주는 통조림과 자물쇠가 채워진 도시락만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결국 고종은 궁궐이 가장 위험한 지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896년 2월의 어느 추운 새벽, 고종과 세자는 궁녀들이 타는 가마에 몰래 숨어 궁궐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러시아 공사관'이었습니다.
왕이 자신의 나라 궁궐을 버리고 외국 대사관으로 도망쳐 보호를 요청한 이 씁쓸한 사건을 '아관파천'(아라사 공사관으로 파천함)이라고 부릅니다.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는 약 1년 동안, 고종은 신변의 안전은 보장받았지만 대가로 조선의 수많은 권리(광산 채굴권, 삼림 채벌권 등)를 러시아와 서양 강대국들에게 공짜나 다름없이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힘없는 약소국의 왕이 선택한 눈물겨운, 그러나 비참한 생존 궁리였습니다.
역사가 남긴 뼈아픈 교훈
명성황후의 비극적인 시해와 고종의 아관파천은 조선 왕조의 권위가 바닥을 넘어 땅속으로 추락했음을 보여주는 슬픈 단면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배우며 기억해야 할 것은, 국제 사회는 냉혹한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명성황후의 외교적 노력은 훌륭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국가 자체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없었기에 결국 비극을 막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공사관에서 눈물을 삼키던 고종은 이대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조선의 자존심을 세우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3줄 핵심 요약
외교적 견제와 일본의 음모: 명성황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의 독점을 막으려 했으나,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왕비를 제거하려는 잔인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을미사변의 비극: 1895년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을 습격해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전대미문의 사건인 '을미사변'을 저질렀습니다.
아관파천과 국권의 손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한 '아관파천'으로 인해 왕실의 권위는 추락했고, 서양 열강에 많은 이권을 빼앗기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은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온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 했던 마지막 노력과, 결국 순종 임금을 끝으로 조선 왕조 500년이 막을 내리게 되는 가슴 아픈 종말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외국 공사관으로 피난을 갔던 고종의 '아관파천'은 왕의 목숨과 나라를 보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아니면 나라의 체면을 구긴 부끄러운 도망이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