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14편에서 다루었듯이 대한민국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헌신,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을 발판 삼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한강의 기적'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빌딩숲과 수출 수치 이면에는 여전히 어두운 그늘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바로 '정치적 민주주의의 부재'였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국민들은 경제적 안정을 얻은 뒤, 이제는 빼앗겼던 자신의 온전한 권리이자 주권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에 이어 1980년 신군부 세력의 등장과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을 거치며 억눌려왔던 국민들의 분노는, 1987년 운명의 봄을 맞아 마침내 폭발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시민의 힘으로 군사 독재의 막을 내리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일상적 민주주의의 틀을 완성한, 그 뜨거웠던 1987년의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1. 박종철과 이한열, 광장의 불을 지핀 청년들의 희생
1987년 당시 전두환 정권은 체육관에 대의원들을 모아놓고 대통령을 간접 선거로 뽑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국민들은 당연히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게 해달라"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정권이 이를 묵살하고 탄압하던 중, 1987년 1월 세상을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박종철 군이 경찰의 불법 연행 후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것입니다. 당시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발표를 내놓았지만, 부검의의 양심선언과 언론의 추적으로 잔혹한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6월 9일, 이번에는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 군이 시위 도중 경찰이 수평으로 조준 발포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지는 비극이 연달아 터졌습니다. 하얗게 질린 동료의 품에 안겨 피를 흘리는 청년의 사진은 다음 날 아침 전국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이는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까지 광장으로 뛰어나오게 만든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2. 호헌철폐 독재타도, 넥타이 부대와 시민이 하나 된 6월 항쟁
1987년 6월 10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호헌철폐(헌법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책동을 부수자)", "독재타도"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번 시위는 과거와 달랐습니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점심시간을 맞은 평범한 은행원, 회사원들이 거리로 나와 박수를 치고 휴지를 던지며 시위대를 응원하는 '넥타이 부대'가 등장한 것입니다. 버스 기사들은 경적을 울리며 동조했고, 시장 상인들은 학생들에게 물과 간식을 건넸습니다.
남녀노소, 직업을 불문하고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약 20일 동안 전국적인 스크럼을 짜고 독재 정권에 맞섰습니다. 매일 밤 도심은 최루탄 연기로 자욱했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계엄령을 검토하며 무력 진압을 꾀하던 정권도 전 국민적인 저항 앞에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6월 29일, 당시 여당의 대선 후보였던 노태우는 국민들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국민의 기본권 신장을 골자로 하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피 흘리지 않고 오직 평화적인 시민의 연대로 독재의 항복을 받아낸, 우리 현대사 최고의 승리였습니다.
3. 1987년 체제의 완성, 그리고 당당한 UN 가입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한민국은 1987년 10월,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9차 개헌 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성과가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정 정치적·사회적 기본 틀이 바로 이때 만들어진 '1987년 체제' 위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손으로 지도자를 심판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완벽하게 뿌리내린 것입니다.
내부적인 민주주의 완성과 화려한 경제 성장은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전 세계에 역동적인 모습을 과시한 대한민국은, 마침내 1991년 9월 17일, 북한과 함께 국제연합(UN)에 동시 가입하며 당당한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앞서 10편에서 UN의 결의로 힘겹게 출범하고, 12편에서 UN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나라를 지켜내야 했던 원조 수혜국 대한민국이, 이제는 국제 사회의 어엿한 주역이자 의무를 다하는 공여국으로 우뚝 선 감격스러운 역사적 이정표였습니다.
4. 우리가 오늘 누리는 일상의 기적
신민회와 신흥무관학교의 외로운 씨앗에서 시작해(2편), 3·1 만세 운동의 불꽃을 지나(3편), 6·25 전쟁의 참화(11편)와 한강의 기적(14편)을 거쳐 1987년 광장의 함성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매 순간이 거대한 시련이자 기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주말에 광장에 모여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고, 5년에 한 번씩 투표소로 향해 내 주권을 행사하며,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의 풍요를 누리는 일상은 결코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총을 들었던 독립군, 포탄 속에서 낙동강을 사수했던 군인과 학도병, 가난을 끊어내기 위해 이국땅 막장과 현장에서 땀 흘린 노동자, 그리고 불의에 맞서 맨몸으로 최루탄 앞을 막아섰던 학생과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5편에 걸친 이 눈물겹고도 자랑스러운 여정은 끝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소중히 가꾸고 이어가야 할 위대한 유산입니다.
핵심 요약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군의 최루탄 피격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 국민적인 분노가 폭발하며 6월 민주항쟁이 발발했습니다.
학생과 평범한 직장인(넥타이 부대)이 하나 되어 독재 정권에 맞섰으며, 결국 정권의 항복을 받아내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1987년 개헌을 통해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진 대한민국은, 1991년 UN에 남북한 동시 가입하며 국제 사회의 당당한 주역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시리즈 연재 마침
그동안 [한국 근현대사 시리즈: 빼앗긴 들에서 세계의 주역으로] 15편의 대장정을 함께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자랑스러운 역사의 발자취가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자부심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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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부터 15편까지 이어온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중, 여러분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울렸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무엇이었나요? 자유로운 감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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